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과 이에 대한 각축을 살펴보면, 언론에 대한 권력의 통제와 언론 본연의 역할이라 할 수 있는 감시견의 모습 두 가지 결이 함께 관찰된다.
지난 이명박 정권부터 공영방송을 장악해온 보수 정권은, 박근혜 정권 하에서 완전히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나아가 이명박 정권에서 이루어진 미디어법 개정을 통해 종합편성채널이 만들어지게 되면서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언론의 특정 입장에 대한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되었다. 다시 말해 목소리가 큰 언론(발행부수가 많은 보수 신문사)이 방송사까지 가지게 되면서, 그들의 목소리가 언론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들에게 새로운 밥벌이를 제공한 권력에게, 언론은 권력의 입맛에 맞는 보도를 이어가는 '애완견'으로 전락하게 된다.
권력의 직접적인 통제가 가능한 공영방송과 함께, 종합편성채널까지 권력의 손아귀에 놓인 것이다.
무려 이랬던 TV조선이다. (출처: TV조선 시사토크 판, 2011년 방송분 갈무리)
이러한 상황 속에서 TV조선의 최순실 박근혜 국정농단 게이트에 대한 첫 보도는 언듯 보기에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권력의 입맛에 맞는 보도를 통해 그들의 이익을 공동 추구해야 함에도, 칼날을 청와대로 향한 것은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문 격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해석이 있는데, 가장 유력한 것으로는 박근혜 정권에 대한 여론이 악화일로에 걸으면서,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의 재집권을 위해 가지치기를 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TV조선의 칼날이 지나치게 예리하였기에, 주필을 부패 언론의 일원으로 낙인찍어 그 목소리를 눌른 것이라 해석해볼 수 있다.
이어 이루어진 한겨레의 보도와 JTBC의 보도는 권력에 대한 언론의 감시의 전형이라 할 법 하다. 그간 정권을 가리지 않고 감시와 견제에 앞장섰던 한겨레의 행보는 낯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JTBC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종합편성채널로서, 그 태생부터 권력과 같은 노선을 걷는 언론사였다. 그렇기에 손석희 보도부문 사장의 영입은 많은 사람들에게 당혹감을 주었다.
JTBC 뉴스9 앵커석에 오르며, 손석희 사장은 현실에 대한 인식과 미래에 대한 포부를 분명히 밝혔다. (출처: JTBC 갈무리)
하지만 손석희와 그의 뉴스룸을 통해 사실상 최순실 박근혜 국정농단 게이트가 국민적 공분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며, 탄핵과 제19대 대통령 선거,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까지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왜 중앙일보와 JTBC의 모기업 중앙미디어네트워크 회장 홍석현, 그리고 그의 아들이자 JTBC 사장 홍정도는 손석희를 영입한 것일까? 아울러 한국 언론에서 단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보도부문 사장'이라는 직책을 만들어 그를 그 자리에 앉힌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단계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먼저 중앙일보의 성격 문제이다. 보수 언론이라 하여 이른바 조중동으로 묶이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보수 권력의 기조에 동조하고 결을 같이 하는 언론 권력 집단이다. 하지만 중앙일보와 그 내부에서는 조중동으로 묶이는 자신들의 위치를 상당히 거부하는데, 그것은 자신들의 성격이 분명히 다르다는 인식 때문이다. 사실 중앙일보는 친정부 적이라기보다는 친기업 언론이라 할 수 있다. 기업을 위한 정부에 지지의사를 표명하는 과정에서 보수와 그 가치를 많이 공유했을 뿐, 때로는 진보 정권과도 적극적으로 호흡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중앙일보인 것이다. (스스로를 세련되고 미래지향적인 언론이라 자평하는 중앙일보이기에, 내부적으로는 조선, 동아와 묶이는 사실을 불편해하기도 한다.) 따라서 같은 종합편성채널일지라도 JTBC는 그 결이 다른 길을 걸어 왔다. 적극적으로 예능 방송을 키워왔으며, 압도적인 투자를 통해 다양한 시도로 젊은 층의 마음을 사로 잡아 왔다. 이 과정이 자연스럽게 두 번째 단계로 이어질 수 있다.
두 번째는 홍정도의 기업 운영 방향과 손석희의 활용이다. 홍석현 회장의 아들 홍정도는 JTBC를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방송으로 만들기 위해 특별히 공을 들여왔다. 동양방송(TBC)를 통해 이미 중앙방송사로서 경험을 쌓은 그들이었기에, 타 종편과 차별화된 콘텐츠와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구성을 펼쳐 왔다. 하지만 보도부문에 있어서는 지상파 3사에 비교는 물론 타 종편에 비교해서도 뒤떨어지는 형태였다.
한때 그들은 토끼와도 인터뷰를 했다. (출처: JTBC 뉴스9 화면 갈무리)
이런 식으로는 차별화는 물론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게 되리라는 사실이 자명했기에, 홍정도 사장은 보도부문의 절대적 독립권을 보장하며 손석희 사장을 영입하게 된다. 홍석현 회장의 회고록에 따르면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바른 생각과 바른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최고의 인재'로 꼽으며, '손석희 사장이라면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보도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는 판단'에서 그를 영입했다고 설명했다. 삼고초려 끝에 영입을 앞두고, 손석희 사장은 '모든 걸 믿고 맡겨달라'라는 말과 함께 사장직을 승락한다.
결과적으로 경영전략과 손석희 사장의 저널리즘 가치 추구가 합이 맞아, 지상파 메인뉴스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은 물론 공영방송 KBS보다 높은 시청자 뉴스선호도(한국갤럽)을 기록하기에 이른다. 젊은이들은 뉴스를 보기 위해 유튜브나 포털 사이트의 뉴스룸 클립을 찾아 보며, 손석희의 보도를 신뢰할 수 있는 뉴스로 여기게 된다.
심지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증거가 되는 태블릿 PC를 건낸 건물 관리원도 'JTBC라면 제대로 보도하겠다'라는 마음으로 주었다는 진술을 할 만큼, JTBC는 공정, 신뢰의 언론으로 국민의 마음 속에 단단히 자리잡는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제19대 대선 정국으로 들어서면서 다소 달라지게 된다. 이어지는 글에서 그 상황을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