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가을이면 '공채 냄새'가 납니다. 여름 내내 자소서를 썼던 수험생들이 수능 냄새를 맡기 시작할 때면 취준생들은 공채 냄새를 맡죠. 기업별로 요구하는 자소서 항목이 갈수록 세분화되어가다보니 예전엔 복사-붙여넣기로 가능했던 일들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물론 정해진 틀이나 요구하는 능력, 장단점과 같은 항목이 크게 달라지진 않지만 완전히 복사-붙여넣기를 해서는 수많은 자기소개서를 채우기 어렵습니다. 많은 개수의 자소서를 써야하기 때문에 시간을 아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죠.
미리미리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어두면 자소서에 들어가는 시간을 아낄 수 있습니다. 오늘은 평생 자기소개를 써야하는 이 땅의 젊은이들과 더 많은 사람들의 글쓰기 체력을 늘려주는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단순히 자소서를 잘 쓰는거 뿐만 아니라 글을 보고, 쓰는 기초체력을 길러줘서 글에 대한 두려움도 없애줄 겁니다. 언제나 시작이 반입니다. 글을 쓰는 두려움이 사라지면 글 쓰는데 걸리는 시간, 퇴고, 제출까지 모든 시간이 줄어들거고 어떤 종류의 글도 쓸 수 있게 될 겁니다.
자, 그럼 어떤 책이 있는지 알아볼까요?
유혹하는 글쓰기_스티븐 킹
스티븐 킹은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그린마일, 쇼생크탈출, 미저리 등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계속 회자되는 작품을 써왔죠. 이 책은 스티븐 킹이 직접 글을 어떻게 쓰는지 솔직하고 재밌게 풀어낸 글입니다. 얇지 않은 책인데도 술술 읽히죠. (역시 글을 잘 써서 그렇겠죠?)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는 기분이 듭니다. 스티븐 킹이 어떻게 글을 써왔는지 아주 어린 글부터 유명한 소설까지 창작과정을 엿볼 수 있죠.
스티븐 킹이 글을 쓰는 장면들이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고, 기술적으로 어떻게 퇴고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소개됩니다. 몇가지 주요한 코멘트들이 등장합니다. "불필요한 문장은 쓰지 않는다", "글을 쓸때는 문을 닫을 것, 글을 고칠 때는 문을 열어둘 것" 또한, 기술적으로 어휘를 많이 알고 있으라고 이야기하면서도 문장에서 '어려운 표현'을 쓰기보단 직설적이고 평이한 표현을 쓰라고 조언합니다. 퇴고하는 스킬도 알려주는데요. 초고를 완료하면 책상 서랍에 넣어놓고 한참동안 보지 않다가 나중에 읽어보라던지....
이 책의 매력은 글쓰기를 알려주는 책이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는 겁니다. 풍부한 예문을 주기 때문에 어떻게 쓰라는 건지 감을 잡기도 쉽죠. 쉽게 쉽게 읽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건 분명, 스티븐 킹이 '글'을 잘 쓰는 사람이기 떄문이겠죠. 소설이나 가벼운 에세이를 쓰려는 분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유시민의 글쓰기특강_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작가, 썰전의 패널, 알쓸신잡의 낚시와 맛집을 좋아하는 아저씨. 유시민의 대표작은 무엇일까요? 여러 견해가 있겠지만 아마 다들 항소이유서를 꼽을 겁니다. 줄줄써내려가고 고치지도 않은, 200자 원고지 100자 분량의 글이죠. 이른바 서울대 프락치 사건과 관련 법원 판결에 불복해 쓴 항소이유서입니다. 유시민의 말에 따르면 14시간동안 썼는데 퇴고하거나 글자를 고칠 수 없어서 써야하는 모든 내용을 머리속에 다 넣고 잘 나오지 않는 펜으로 썼다고하죠.
글을 하도 많이 써서 어쩔 수 없이 잘 쓰게 된 유시민 작가. 한 포털에서 글쓰기 상담을 진행했는데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2015년에 1쇄를 찍어 2년 사이 15쇄가 넘었으니 글쓰기가 궁금하신 분들이 이걸 정말 많이 읽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장점은 체계적으로 글쓰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겁니다. 스티븐 킹의 책이 일반적인 글 전반 혹은 소설에 적용할 수 있는 글쓰기 방법이었다면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주제'를 잡는 방법부터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각종 책까지 추천해줍니다. 주제에 대해서 써야할 것, 하지 말아야할 것을 알려주는 부분이 가장 좋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잊는 부분이거든요. 또한, 스티븐 킹이 미국의 작가이기에 놓쳤던 부분을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채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주 잘못쓰는 문장, 번역투, 피동형, 복수형태 등 정갈한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는 각종 이야기를 수록해놧습니다.
유시민은 '취향'을 두고 논쟁하지 말며 '주장'은 반드시 논증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책의 첫 챕터의 소제목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소제목을 어떻게 뽑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글쓰기 특강의 목차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소제목은 어떻게 짓는 건지 고민한다면 책을 검색해 목차만 살펴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움베르트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방법_움베르트 에코
움베르트 에코는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등의 소설로 한국에 잘 알려진 작가입니다. 동시에 세계적인 석학입니다.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교수로서 기호학, 문학, 에세이, 비평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죠. 이런 그가 어떻게 하면 논문을 잘쓰는지 '책'으로 낸겁니다. 물론, 글을 잘 쓰는데 왜 '논문'까지 등장했냐고 물을실 수 있습니다. 왜 논문일까요?
이는 단순히 논문이라는 글쓰기 분류 중 하나가 아닙니다. 논문은 연구 문제를 세우고, 기존 문헌을 검토하고, 알맞은 근거를 들어 연구 문제에 대한 답을 내놓고, 의미하는 결론을 분석해야하죠. 논문이라는 형식이 없다면 이 이야기는 사실 모든 글에 적용됩니다. 다만 논문은 조금 더 학술적으로 의미가 있어야하며, 그렇기에 글의 체계가 학술적으로 잡혀있죠. 또한, 인용과 참고문헌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등 글쓰는 사람으로서 윤리를 지켜야합니다. 당장 논문을 쓰지 않더라도 몸에 새겨놓을 만한 일이죠.
또한, 최근 대학생들의 과제에서 표절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표절을 잡는 시스템도 갈수록 정교화되어가고 있죠. 그러나 대학생이 표절이 무엇인지, 어디까지가 인용인지, 어떻게 과제의 구조를 세워야하는지 배울만한 곳은 없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논문을 찾는다 해도 논문을 잘쓰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표절의 덫에 걸리기 쉽상입니다. 어떻게 과제를 시작해야하는지 인용과 참고문헌은 어떻게 하는건지. 굉장히 빡빡하고 재미없는 글이지만 쭉 읽어가다보면 대학원생과 교수를 능가하는 글을 쓸 수 있을겁니다. 교수님이라고 모오오두 글을 잘 쓰시는건 아니니까요.
지금까지 설명드린 책은 저도 곁에 두고 종종 보는 책입니다. 공채 때 자소서 들고 고민하지말고 평소에 미리미리 체력을 길러두는 건 어떨까요? 그게 아니더라도 글을 잘 쓰는건 아마 당신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거에요. 장담합니다.